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뮌헨 협정 (문단 편집) === 외교 === 독일은 외교적 명분론에서도 '''[[민족자결주의]]'''를 등에 업고 있었다.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압박엔 반대하면서도 주데테란트 요구에 대해서는 '''같은 민족이니 당연하지'''라고 생각한 영국-프랑스인들도 상당했다.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서 그 영국, 프랑스가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을 분할했으므로 일반인에겐 자연스런 반응이었다.[* 기실, 이는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름으로 오헝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던 와중 명분없이 독일 제국까지 해체한 영불의 실수이기도 하다.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르면 독일 제국은 기껏해야 폴란드와 맞대고 있는 지역 일부 정도를 떼 줄 정도로 일단 독일은 그런 지역에 살고 있는 폴란드인을 제외하면 단일민족국가에 많이 가까워 애초에 영불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 버린 면이 크다. 당장에 이 회담에서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땅 뜯어먹기에 동참한 것을 보면 이 시기 나치 독일이 얼마나 큰 명분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. 더욱이 그 명분을 준 이는 다름아닌 '''영불 자신들이었다.'''] 거기에 외교 협상을 주도한 영국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이해 관계가 적었고[* 당시 영국 정치권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없어도 프랑스가 있으니 상관없다고 여겼다. 영국은 백만 대군을 보유한 유럽에서 손꼽히는 육군 강국인 프랑스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프랑스는 영국 없이는 전쟁도 없다는 내부 방침을 유지하고 있었다.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중 [[프랑스군]]을 시찰한 [[윈스턴 처칠]]은 프랑스의 백만 대군은 허상이었다며 크게 개탄했고 훗날 [[프랑스 침공]]에서 '''정확하게 들어맞았다.'''] 체코슬로바키아를 옹호해야 할 프랑스는 군사 문제 부분에서 설명하였듯 외교적으로 영국에 끌려다니던 상황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